시를 많이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다시 읽고 싶은 시집이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이다. 이 시집에는 여러 인상적인 시들이 많이 있지만 제목에서부터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질투는 나의 힘'이란 시를 소개하고 나름대로의 해석, 그리고 감상에 대해 적어 보고자 한다. 그럼 우선 '질투는 나의 힘' 시를 감상해 보자.
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 1989 '입 속의 검은 잎'에서 )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시를 읽고 나서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이란 시를 전체적으로 해석해 보면, 자유롭고 서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미래의 자신의 관점에서 젊은 시절의 모습 즉, 현재의 모습을 비관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미래의 자신의 관점에서, 청춘인 현재의 상황을 허황된 욕망이나 꿈을 좇는 모습, 방황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을 성찰해 보면서, 희망의 원천은 질투라는 것을 깨닫고,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모습에 대해 자조적(自嘲的)인 평가를 내린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 미래 어느 날 = 아마도 시인의 나이가 60이나 70쯤 되어 있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가정하고 있다. 시를 적어 둔 메모 종이가 떨어진다. 아마 이 시들은 시집으로 발간되지 않았을 거라고 보고 있다. 즉 미래의 자신이 지금 쓰고 있는 시 혹은 그 당시쯤 써 놓은 몇 장의 시들을 우연히 보고 있는 느낌이다. 힘없는 책갈피는 그 당시에 자신이 그래도 중요하다고 여겼던 부분에 꽂아 놓았던 것이라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처럼 그 책갈피마저 힘이 없게 느껴진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미래의 자신의 관점에서, 현재 쓰고 있는 시, 혹은 그 당시 써 놓은 시들을 보며 과거(실제로는 현재)를 회상하며 말한다. 그때라는 시점 또한 사실상 현재이며, 너무나 많은 공장은 시를 쓰기 위한 수많은 생각이나 여러 계획들 혹은 헛된 꿈이나 욕망들을 말하는 것 같다. 근데 문제는 그게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러한 기록들, 즉 수많은 생각을 통해서 만들어낸 수많은 시들을 이루어낸 과정은 어리석었다고 미래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을 비판적으로 느끼고 있다.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현재 자신의 모습이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와 같다고 표현한다. 개가 무엇을 찾을 때 천천히 쏘다닐까? 아마도 먹을 것? 아니면 짝짓기를 하기 위한 대상? 즉, 아주 현실적 혹은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거나, 충동적인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어떤 몸부림 같은 거라 생각이 든다. 공중에서 지칠 줄 모르고 머뭇거렸다는 표현에서 결국 목표는 구름이며, 구름은 헛된 꿈이나 욕망 같은 것을 비유하며, 결국 뜬구름처럼 잡으려야 잡을 수 없는 목표를 두고 지칠 줄 모르게 분투하거나 방황했다고 할 수 있겠다. 공중에서 오래 머물기 어렵듯, 결국 추락하는 결과를 맞이할 거라 말해 주는 듯하다.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탄식을 하는 이유는 뭘까? 뭔가 일이 잘 안될 때, 실패할 때, 희망이 없을 때 탄식을 하지 않을까? 공장을 세우는 일이나 공중에서 머뭇거리는 일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 버린다. 그래서 탄식을 한다. 미래의 자신은 현재의 자신을 보며 허황된 꿈과 욕망을 찾아온 삶의 결과가 탄식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태양이 지고 저녁 시간의 거리에선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과거의 모습을 회상하며 술 한잔을 기울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지나가는 청춘들을 보며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걸까? 물끄러미 즉, 멍하니 청춘을 세워둔다? 무슨 의미일까? 청춘이 정지된 느낌이 든다.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즉 현재의 자신)을 정지 화면처럼 멈춘 후에 한 장면 한 장면 다시 천천히 보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청춘을 세워 두었다. 지금 시간은 멈춰져 있고 과거의 모습(현재의 모습)을 하나둘씩 떠올리며 회상하며 성찰한다. 근데 왜 신기한 걸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서? 20대에서 벌써 60대가 되어 버린 게 신기한 걸까? 아니면 이렇다 할 결과도 없이, 허황된 꿈과 욕망을 좇아 살아온 날들이 아무런 결과도 없이 너무 빠르게 훌쩍 지나가 버렸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걸까?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결국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 즉 나는 존재감이 없는 의미 없는 존재, 혹은 어떤 영향력도 없는 그런 존재로 살고 있고, 살아왔던 것이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시인이 생각했던 희망의 내용, 즉 희망의 근본 혹은 원천이란 게 질투!였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것들이 타인에 대한 시기, 부러움, 질투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위에 사실을 깨닫고 여기에 짧게 기록하기로 결정한다. 왜 짧은 글일까? '너무나 많은 공장',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의 구절의 모습처럼 하지 않겠다고 반성을 하는 건 아닐까?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 결국 헤매기만 하고 진정한 사랑 혹은 진정한 꿈과 희망의 결과를 찾지도 얻어 내지도 못한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쩌면 스스로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사실을, 마치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평가하며 느끼고 있는 듯하다.
윤동주 참회록과 닮은 점
참고로 '질투는 나의 힘'의 해석에서 볼 수 있듯이, 미래의 자신이 현재 자신를 성찰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 내용은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을 연상케 한다. 윤동주 시인이 지금 현재 연세대학교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연희전문학교 출신이며, 기형도 시인은 윤동주 시인을 존경하는 의미로 '질투는 나의 힘'에 참회록을 연상케 하는 시적 방법을 넣은 듯하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기형도 시인의 삶과 시
기형도 [ 奇亨度 ] 시인 - 1960년 2월16일 - 1989년 3월 7일
1960년 2월 16일 경기도 연평 출생으로 어릴 적 한때 집안은 유복한 편이었으나,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생계를 담당해야 했는데, 기형도 시인이 중학교 때 누나마저 사고로 죽었다. 그때부터 기형도 시인은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79년 연세대에 입학하고 연세대 문학 서클 [연세문학회]에 들어갔고, [박영준문학상]에서 '영하의 바람'으로 가작 입선하였다. 전공은 정치외교학과로 졸업하고 중앙일보에 1984년 입사해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 기자 생활을 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1985년 시 '안개'로 당선되어 등단한 후,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기형도 시인은 시집 출간을 앞두고, 1989년 3월 7일 새벽 4시, 서울 종로의 파고다극장에서 소주 한 병을 든 채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뇌졸증이었으며, 당시 만 28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후 지인들과 문우들이 펴낸 [기형도 전집]과 [정거장에서의 충고]가 간행되었다.
기형도 시인은 가난한 집안 환경과 병 든 아버지,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 집안 생계를 위해 직장을 다니는 누나 등, 우울하고 어두운 시인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회상을 토대로 시를 썼다. 기형도 시인의 시에는 우울과 비관적인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거기에는 어린 시절의 불우한 가정 환경 이외에도, 70·80년대 억업적인 정치 · 사회적인 상황들도 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시인의 관점은 대부분 아주 비관적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by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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